도쿄돔의 침묵, 연장 혈투 끝 대만에 무너지다
2026년 3월 8일, 일본 도쿄돔은 한국 야구팬들의 탄식으로 가득 찼습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숙적 대만에 연장 10회 승부치기 접전 끝에 4대 5로 뼈아픈 패배를 당했습니다. 체코와의 첫 경기를 대승으로 장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이어진 일본전 패배에 이어 대만에게까지 덜미를 잡히며 1승 2패, 조 4위로 추락했습니다. 17년 만의 8강 진출이라는 목표에 거대한 적신호가 켜진 순간입니다.
이번 패배는 단순히 1패 이상의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역대 WBC에서 대만을 상대로 4전 전승을 기록했던 한국 야구의 '무패 신화'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대만과의 전적이 2승 5패로 열세에 놓여있던 흐름이 이번 WBC에서도 이어지며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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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뒤치락, 손에 땀을 쥐게 한 명승부
경기 내용은 그야말로 혈투였습니다. 양 팀은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전을 펼치며 도쿄돔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귀환과 아쉬운 홈런 한 방
16년 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7년 만에 WBC 마운드에 오른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한화 이글스)의 어깨에 모든 기대가 쏠렸습니다. 류현진은 1회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2회초, 대만의 4번 타자 장위청에게 던진 실투 하나가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으로 연결되며 선취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후 3회까지 추가 실점 없이 3이닝 1실점으로 막아냈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습니다. 경기 후 류현진은 "팀이 졌기 때문에 개개인이 잘했는지는 상관없다"며 "실투 하나가 홈런으로 연결된 게 아쉽다"고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꺼져가던 불씨를 살린 김도영의 '원맨쇼'
패색이 짙던 한국 대표팀을 구한 것은 '차세대 거포' 김도영(KIA 타이거즈)이었습니다. 1-2로 뒤지던 6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대만 투수의 시속 151.4km짜리 빠른 공을 그대로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타구 속도 176km, 비거리 119m에 달하는 대형 홈런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8회초 구원 등판한 데인 더닝(시애틀 매리너스)이 스튜어트 페어차일드에게 통한의 역전 투런포를 허용하며 경기는 다시 3-4로 뒤집혔습니다.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운 8회말 2사 1루, 해결사는 또다시 김도영이었습니다. 우중간을 가르는 동점 적시 2루타를 터뜨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이날 팀이 기록한 4안타 중 2개를 책임지고, 3타점을 홀로 쓸어 담는 '원맨쇼'를 펼쳤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엇갈린 희비, 연장 10회 승부치기

결국 정규이닝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은 연장 10회 승부치기에 돌입했습니다. 10회초, 한국은 대만의 스퀴즈 번트에 결승점을 내주며 4-5로 뒤처졌습니다. 이어진 10회말 마지막 공격, 1사 3루의 동점 찬스를 잡았지만 김혜성(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1루 땅볼 때 홈으로 쇄도하던 3루 주자 김주원(NC 다이노스)이 아웃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결국 마지막 타자 김도영이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나며 경기는 그대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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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몰린 대표팀, 8강 진출 경우의 수는?
대만전 패배로 한국은 1승 2패를 기록, C조 4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자력 8강 진출은 불가능해졌고, 이제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가시밭길이 남았습니다.
시나리오 1: 호주가 일본에 승리할 경우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만약 8일 저녁에 열리는 경기에서 호주가 일본을 꺾는다면, 한국은 9일 호주와의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시나리오 2: 일본이 호주에 승리하고, 한국이 호주에 승리할 경우
현재로서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입니다. 일본이 호주를 꺾고, 한국이 9일 호주를 이기면 한국, 호주, 대만이 나란히 2승 2패로 동률을 이루게 됩니다.
이 경우, 세 팀 간의 맞대결 전적이 모두 1승 1패로 같아지므로 '최소 실점률'을 따져 순위를 가리게 됩니다. 최소 실점률은 동률 팀 간의 맞대결에서 기록한 실점을 수비 아웃카운트로 나눈 값입니다.

현재 대만은 2경기를 모두 치러 18이닝 7실점, 호주는 대만전에서 9이닝 무실점, 한국은 대만전에서 10이닝 5실점을 기록 중입니다. 이 복잡한 계산을 뚫고 8강에 오르기 위해선, 한국은 9일 호주와의 경기에서 반드시 5점 차 이상으로 승리하면서, 실점은 2점 이하로 막아야 합니다. 만약 3점 이상을 실점하게 되면 대만에 실점률에서 밀려 탈락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만이 유일한 해법인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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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야구 대표팀에게 남은 경기는 단 하나, 9일 호주와의 최종전뿐입니다. 벼랑 끝에 몰린 대표팀이 과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든 야구팬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도쿄돔으로 향하고 있습니다.